HOME> 책방 북하우스 > 신간소개
 
 
   
제목
| 퇴계의 시
작성일
| 2017-07-22 오후 12:13:46 조회수 | 250


“붓끝에서 만나는 퇴계의 삶과 정신”
퇴계의 시 107편에서 찾은 조선시대 선비 정신의 정수


“퇴계 선생의 정신과 품성이 붓끝을 따라
손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퇴계의 시』는 서암(舒庵) 이장환(李長煥)이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남긴 시 2,000여 수 중 107수를 골라 시와 뜻을 붓글씨로 써내려간 서예집이다. 마음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 한시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 붓글씨를 연습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 특히 서예 입문자를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에 정자체 위주로 작품을 구성했다. 서암 이장환은 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 등 수많은 서예전에서 상을 받은 만큼 그의 글시는 일필일획 모두 모범이 된다. 중간중간 대나무와 매화, 소나무 등을 그려 보는 맛을 더했다.


붓끝에서 만난 퇴계의 정신
퇴계 선생은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유학자다. 선생은 명조와 선조 등 왕이 부르는데도 사직 상소를 올리거나 병을 핑계로 낙향하는 등 평생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 연구에만 몰두했던 참선비다.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세워 많은 저술을 남기고 후학을 양성했다.
특히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등 평생 1,000여 편의 시를 남겨 진정한 선비 정신을 시로 담아내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선생의 시는 선생이 살아 있을 때부터 수많은 시인이 꾸준히 차운해왔다. 선생이 활동했던 영남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 충청, 강화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문인이 선생의 시를 차운했다. 스승의 시만을 차운하는 당시 문화와 비교해볼 때 퇴계 선생의 시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만큼 선생의 시가 조선의 선비 정신을 대표하는 시성(詩性)을 지니고 있다고도 하겠다.

枯竹고죽 · 63세
가지와 잎이 반은 말랐지마는
기세와 절개는 전혀 죽지 않았다네
고량진미 먹는 자제들에게 말하노니
초췌한 선비 가벼이 보지 말게나
枝葉半成枯 氣節全不死
寄語膏粱兒 無輕憔悴士
_ 302쪽

퇴계 선생의 시 중에서도 그 정신을 가장 잘 담은 107수를 골라 구성한 『퇴계의 시』는 퇴계 선생의 전성기 작품만 소개하지 않았다. 10대부터 70대까지의 시를 골고루 실어 어릴 적의 치기와 젊을 때의 힘참, 노년의 완숙함을 모두 느낄 수 있게 했다.


고인을 못 봬도 그분들이 걸어가신 길이 눈앞에 있다
“평생 서예와 함께 살아오면서도 고집스럽게 개인전을 열지 않았던 서암 이장환의 첫 개인전은 곳곳에 겸손함이 묻어 있습니다. 서법을 아는 사람도, 서법을 모르는 사람도, 모두가 편안히 볼 수 있게 배려한 작품들이 눈길을 끕니다.”

10년 전 저자 이장환의 첫 개인전을 보도한 기자의 평이다. 퇴계 선생 16대손으로 어려서부터 붓글씨를 배운 만큼 평생 붓을 들었고 또 그만큼 국내의 큰 서예전을 휩쓸다시피 한 저자이지만 그의 붓글씨는 화려하지 않고 겸손하다. 퇴계의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정자체로 글씨를 썼다. 행서체나 예서체로 붓을 놀릴 때도 최대한 흩뜨리지 않았다. 오랜 경력의 서예가가 썼다고 하기엔 매우 검박(儉朴)하다. 하지만 그 안에 깊고 흔들리지 않는 단아함이 있다. 그 겸양(謙讓)의 미(美)가 참으로 ‘선비답다.’

“철부지 초등학교 시절 얼떨결에 붓을 잡은 이후로 어느새 50년이 지나갔다. 이 길에 들어선 이후 한땐 큰 공모전에 도전하는 데 골몰했다. ……50세 무렵부터는 사회적인 활동과 교유를 줄이고 바깥출입을 최소화하면서 나는 좀더 자유롭고 새로워진 마음으로 붓을 잡을 수 있었다. 극히 고요하고 한가로운 시간에 붓을 들었다. 그 느낌은 이전과 달랐다. 더 깊이 깨닫는 충만한 확신, 행복감.” _ 5쪽
어찌 보면 퇴계 선생의 시를 쓰게 된 것 역시 그 ‘선비다움’ 때문이 아닐까. 겸손함과 겸양 모두 선비의 미덕이다. 5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저자 이장환의 심성과 퇴계 선생의 시성이 만나게 된 것이다.

이장환이 쓴 퇴계 선생의 시 「차우인기시구화운」(次友人寄詩求和韻). 단아한 붓글씨가 일품이다.


지은이 서암 이장환
호는 서암(舒庵)과 별밭이다. 1955년 경북 안동에서 나고 자랐으며, 초등학교 시절부터 붓글씨를 썼다. 가학(家學)으로 글씨를 배워 고등학교 2학년 때 안동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한문교육을 전공했고 서예가의 길로 들어선 후로는 유천(攸川) 이동익(李東益) 선생께 사사받았다. 30대 중반부터 공모전에 도전해 40대 초반까지 추사휘호대회 1등(1990), KBS전국휘호대회 대상(1992), 미술문화원 주최 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1992), 한국미술협회 주최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3회(1994~96), 동아미술제 대상(1997)을 받았다. 50대에 들어서는 2007년 9월 서울 운현궁 SK HUB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동안 개인 서예실을 열어 서예를 가르쳐왔고 정부종합청사, 동화은행, 국민은행,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에서도 서예를 가르쳤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서예지도법 겸임교수로 활동했다. 예순을 맞이하면서는 작품 활동에만 오롯이 정진하고 있다.



이전
| 가희 덩리쥔
다음
| 한반도의 새